박물관 할머니
박물관 할머니
박물관 할머니란 우리장모님께 제가 붙혀드린 별명입니다
1917년 정사년 생이시니 올해 우리나이로 94세가 되십니다
역사를 바꾸어 놓으신 박정희 대통령과 동갑이기도 합니다
그 나이에도 사위인 저를 보면 부끄러워 웃으실때는 소녀같이
입을 가리시고 웃어십니다 10여년전부터 아내가 별로 몸이
튼튼치 못하니 와서 도우셨습니다 집안의 일은 혼자서 하시다
시피 하셨읍니다 집안 청소에서 빨래 다림질까지 하십니다
직장에 다닐때 사위가 하루에 하나씩 벗는 와이셔츠가 힘이
드셔도 내색도 않으시고 부지런히 하시면서도 사위가 즐겨먹는
음식은 아예 먹지고 못한다고 자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저가 생선을 좋아하면 생선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으십니다
비린내가 싫다는게 장모님 말씀이신데 쉰음식이라 버린다고
하면 기어이 잡수시겠다고 해서 딸과 말다툼을 합니다.
주일에는 처남이 다니는 교회에 저가 모셔드리면 예배후에
본가에 가셨다가 월요일저녁에는 저가 퇴근할때 모시고 왔습니다
젊으실때 40세에 홀로 되셔서 논다섯마지기에 밭 천평을 경작
하시면서 채소나 나물을 머리에 이고 60리길인 안동장을 멀다
않고 걸어서 다니시면서 한푼이라도 아끼느라 아까워서 점심도 굶고
고생을 한것이 화근이 되어 환갑이 넘자마자 허리가 굽기시작을
하드니 90도로 굽어셨습니다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80년대 바삐 돌아가는 대학의 형편들로 인해 마음을 쓰지못한게
한이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과 같이 정형외과가 발전되지도
않은것 같았습니다 허리가 굽는구나만 여긴게 마음에 저립니다.
저가 장가간후에 마을에 버스가 들어올 만큼 오지인 안동의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매를 다 대학에 보내어 아들은 대학교수가 되고 딸은 교대를
졸업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게한 억척같은 또순이 할머니이시기도
합니다 3년전부터 몸이 편치를 못해서 계속해 우리집에 계시면서
교회도 다니시지 못하고 주일은 기독교 TV만 보셨는데 휠체어를
준비해서 다니시자고 해도 남보기 부끄럽다고 사양만 하셨습니다
그러시다 지난해 부터는 주일과 수요일엔 저들과 같이 교회에 가시는데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서고 가기가 어려워 집에 계십니다
삼년전 부터 몸도 몸이지만 정신도 많이 흐려지시고 옛날과 같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보면 치매초기인것 같아 우리내외가 마음대로 집을 비우질 못합니다
친구들로 부터 저녁초대를 받아 나갈때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다고 하시는것을
보면 마음이 놓일때도 있지만 대부분 서둘러 일찍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대부분의 어머니 들이 고생을 하시고 자식위해 한평생을 헌신하시
지만 저가 못먹는것과 싫어하는것만 골라하시는 장모님은 천국
박물관에 전시해야된다면서 저가 붙인 이름이 박물관 할머니 입니다
무엇이 든지 자식먼저 하기를 원하시고 양보하시는 모습이 자손들의
귀감이 됩니다 6월에 동유럽여행때는 본가에 모셔 드리고 갈때도
딸은 마음이 편하지못했고 여행후 여독도 풀리지 않고 모시려 갔을때
그렇게 반가와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짠 함을 느꼈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잠간 왔다가는 아들과 며느리가 어쩌다 오질 못하면
마음 조리며 기다리는 모습이 안스럽습니다
아내가 건강치를 못하니 본가에 모셔다 드릴까 생각도 하지만 며느리보다
딸이 더 편하실거라며 위안을 삼는데 잘못 생각하는게 아니길 바랍니다
시간 계념이 점점 희박해지시고 날로 어려워 지시지만 박물관 할머니가
좀더 많은세월 우리내외와 함께 하시길 오늘도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