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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선생님

백마1 2017. 5. 5. 10:15

 

아름다운 우리 선생님

 1993년 2월 추운겨울날 양지 바른 곳에 앉아서 입가에 웃음을 머물게 하는 아름다운 선생님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맑고 밝게 웃으시던 인자한 박문필 선생님이셨습니다.
경북교육청에 연락을 해보니 경북 동해안 어촌에 교장선생님을 하고 계신다는 반가운 소식이였습니다.

고향 경주에서 고향지킴이를 하고 있는 손두식군과  졸업한 모교 계림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있는 동기생 정영복 친구의

도움으로 5학년2반의 명단을 확보하고 연락에 연락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박문필 선생님이면 당장에 간다”

라는 수화기 음성이 쇄도 했습니다.그래서 모인사람이 23명이였습니다. 동문회에 만났는 얼굴도 있고, 대부분이 졸업후에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그 옛날의 5학년 2반이 였습니다. 날밤을 지세며 보냈습니다.

다음해 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이 있던 날 회장 이였던 김종식군이 축사도 하고, 우리는 모두 모여 기마전으로 선생님을 태우

고 운동장을 돌면서 함성을 지르고 야단을 떨었습니다.

경주시 해변의 감포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축 정년 퇴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1957년 5학년2반 이란 이름의 현수막이 펼렀

었고, 작은 어촌의 화재가 되고 우리 모두의 자긍심을 높이는 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박문필 선생님은 "빼까쟁이가 아니다" "와이로를 먹지 않으셨다" 지금 세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옛말들이 난무하며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춥고 배고픈 시절 동심을 멍들게 만들었든 소수의 선생님과는 달리 진정 이분은 우리 선생님이시고

우리시대의 진정한 사표다. 라는 말이 우리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멈춘지 몇 년이 되질 않는 1957년 옷이 불실한 아이들의 추운겨울을 이기기 위해 반 전체를 빙빙 돌리면서 짜지기

(주리틀기)를 시키시며 쳐지는 아이들을 들어 머리에 올리 실려고 하셔서 난방이 불실한 교실의 환경을 극복하게 하셨고,

남학생들은 철봉을 발차고 뒤로돌아 올라가기, 여학생은 발 걸고 올라가기를 하지를 못하면 고무신에 물을 담아 등 뒤에

부어 시면서 못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게 만드셨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학교 가을 운동회때 선생님 대표로 계주 선수를

하시면서 남다른 체육의 특기도 있었습니다.
 수업중에 갑자기 함박눈이 교정에 내리던 겨울날 고함을 지르며 나가 눈을 맞게 하셨습니다.  우리반이 고함을 지르고

 나가니 전교생이 모두 나와서 내리는 함박 눈속을 달리게 하신 선생님, 학교교정 뒤편 공간에 모를 심게 하셔서 더운

여름날 물을 주어 농사짓는 기쁨을 맛보게 하시고, 가을에는 김장채소를 심게 하고 이름표를 만들어 자신들이 우물 펌프

물을 날라 모든 아이들이 정성껏 가꾸게도 하셔서 수확물은 고아원에 기증하자고 하셨습니다.

 가정방문을 하셔도 그날 방문할 모든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마당에서 마루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가시는 선생님

이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날이 지났는데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면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 최군 아니가 !

저보고 하신 첫마디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년 선생님과 만나서 설악산, 경주, 충청도, 대구, 구미, 서울등 우리 친구들이 연고가 있는 곳에서 매년

모여 밤 세워 놀면서 우리들이 하는 Y담에도 함께 하시면서 세대를 초월하시는 선생님이 우리를 한껏 행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른 반이였던 박형기군과 김영환군은 우리모임에 반해 오래전부터 전반을 했다면서 같이모이고 있어 우리들의 기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또 김인택군은 선생님이 점수를 잘못 채점하셔서 우등생이 되질 못했다는 성화에 지난해에는 1957년

 5학년 2반 담임선생님 이름으로우등상을 수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술을 먹지 않으면서도 밤늦게 앉아 친구들과 같이 논다고 크게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해서 선생님이 딴방에 주무시

는데 제가 늘 모시고 함께 투숙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5학년 때부터 야구 선수를 했기 때문에 시합이 가까와 오면 감독선생님께서 담임선생님들께 이야기가 다 되었으니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라고 합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갈려면 언제나 걱정을 하십니다. 공부 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말씀하

십니다. 책가방을 들고 운동장을 나가면서 고민에 빠진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소풍 때 경주남산에 가서 큰 사고를 냈습니다. 우리 반 몇 명이 일행을 놓치고 다른 길로 하산을 하는 바람에 혼이 났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밤늦게 선생님께서는 우리 일행 중 한명의 집에 가서 무사

귀가를 확인하고 가셨다는 이야길 다음날 학교에 가서 반성문을 쓰면서 알았습니다.
 경주계림초등학교 50회 동문 사이에는 5학년2반의 반창회가 신화로 작용을 합니다.왜 하필 5학년인가 ! 라는 질문에

"박문필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라는 답으로 대신하면 알겠다는 듯이 웃습니다. 동문회는 나오지를 않으면서 5학년2반

만 나온다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은 동문회도 열심히 나갈려고 노력을 합니다.우리 총무를 맡은 우금희 양이 알

뜰하게 살림을 꾸려서 회비는 일 년에 5만원이지만  지금 모인 잔액은 8십여만원 인데 끝까지 가다가 남는 잔액은 제일

늦게 죽는 놈이 가지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모두 장례를 치루갈려면 부의금이 들어도 많이 들어간다고 정한 것입니다. 

구미에 사는 김재연군이 자기 돈이라며 지금도 우깁니다. 97세 까지 산다며 장담을 합니다. 서로가 오래 산다며 우기다가

웃지만 우리의 모임이 더 오래가기를 바라고 함께하실 선생님께서 더 건강하게 오래 계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는

희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시간을 보낸 지도 23년의 세월이 흐르고 우리 모두가 세월이

 비켜나가 수 없어서 벌써 7순이 되었고 선생님이 미수(米壽)인 뜻 깊은 올해에 시인 이면서 출판업을 하는 최채규군이

화보집을 만든다는 반가운 소식에 우리 생에 정말 아름다운 일인 선님과의 지난 일을 회상합니다. 우리의 꿈이며

이시대의 위대한 스승이신 박문필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 계시길 바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2015년 11월 1957년 5학년 2반 제자 최현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