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교 야경
월정교(月精橋)에 대한 기록은 일정교(日精橋)와 같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경덕왕 19년(景德王, 760) 2월에 궁
남쪽 문천에 춘양교(春陽橋)와 같이 축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궁궐 안에 큰 연못을 파고 또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개의 다리를 놓았다. 또 고려 명종(明宗, 1170∼1197)때 시인 김극기(金克己)가 지은 시에
'홍교도영조문천(虹橋倒影照蚊川) '이라는 구절이 보이고, 충렬왕 6년(忠烈王, 1280)에 경주 부유수 노경론
(副留守 盧景論)이 중수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월정교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19년에 조영되어, 고려 충렬왕 6년
(1280)까지 최소 520년 간 다리의 기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경주의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월정교 옛터이다.
이때에 원효대사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요?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무열왕은 그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요석공주에게 원효대사를 보내도록 한다.
원효대사가 경주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월정교(혹은 문천교蚊川橋)를 지나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지니, 신하는 월정교 바로 옆의 요석궁으로 원효대사를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었다. 이때 얻은 아들이 바로 설총(薛聰)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얼켜있는 월정교의 복원된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