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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利見臺)와 감은사지(感恩寺址)

 

경상북도 경주시 대본리 661번지 감포초등학교 앞에 있는 이견대는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 입니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지만 없어지고 1970년에 문화재 발굴로

다시세웠다고 합니다. 신문왕은 해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또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견대 마당에서 바라본 문무왕의 대왕암의 모습.

 

 

이견대에 세워진 이견정의 모습 1970년에 새로 지은 모습입니다.

 

이견대 부근에 있는 감은사지는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역사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신문왕 2) 완성했으며,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골(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大王岩)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절의 이름은 본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鎭國寺)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과

부모님 사랑에 감사해 감은사(感恩寺)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고적해설사가 감은사지의 유래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신문왕은 해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공간을 만들고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