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곳 마다 1대1의 어린이들이 관광객에게 달라 붙는다 가진 물건을 사라고 하는것은
약과이고 대부분 돈을 달라고 한다 앵벌이 수준이다 차림새가 척은해서 돈을 줄라치면
줄을선다 가이드가 늦게 안내를 한다 이들의 부모는 다 숲속에 누워 마약이나 한다고..
돈벌이에 눈이멀어 학교에 배낼 생각을 부모들이 하질 않는다고 한니다 훈센 총리가 관광객
들에게 아이들에게 돈을 주질 않아야 이들이 학교에 간다며 간곡히 부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릴보고 오빠라면서 따라다닙니다 아저씨라고 해라 할아버지라 해라 가르칩니다.
트렌삽호수에서 보는 세모녀의 모습 관광보트옆으로 이동을 합니다.
뱀을 목에 감고 구걸을 합니다 세모녀의 연출이라고 안내인이 일러줍니다.
아무리 연출이라도 보이는 모습은 너무 딱합니다 종일 관광객 배를 겨냥해서 다니다는건 중노동인거 같습니다.
큰 그릇에 몸을 담고 다니는 많은 어린이나 어른들이 보여 마음이 아프지만
아래와 같이 장애인이 간이주유소를 만들어 생활하는 분들이 장해 보입니다.
폴포트가 지휘하는 크메르루즈군은 1975년 4월 17일 수도 프놈펜을 장악하며 통치권을 확보한다.
이 과정엔 미국의 기여(?)도 컸다. 1970년 캄보디아에서는 국방장관이던 론 놀이 사이누크가 소련
으로 갔을때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베트남 공산세력과 싸우고 있던 미국은
론 놀 군사정권을 지지했으며, 월남의 공산세력을 내몰기 위해 론놀 정권을 지원하기에 이릅니다.
초기의 크메르루즈는 '과일을 따면 과일값을 나무 둥치에 남겨 놓았어요'라는 진술처럼 관대하고 친절했으며,
온건한 정책으로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확장해 갔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를 장악해 나가면서 점점
더 과격해졌으며,물질적, 정신적 사유재산을 모두 없애면 인민이 평등해진다는 믿음아래 모든 국민을 집단농장
으로 내몰았습니다. 폴 포트는 "뛰어난 정치의식을 지니면 모든 것을 빠르게 배울 수 있다"며 기존의 전문 기술도
무시하고, 의사, 교사, 전기기사, 상선 선원, 심지어 공장노동자까지 집단 농장으로 내 몰았습니다.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약 3년여의 폴 포트 집권기간 동안 캄보디아 인구 7백만 명 가운데 1백5십만 명이
희생당했다고 추정합니다. 이중 상당 수는 처형이었고, 나머지는 강제노동 속에 질병과 기아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총알이 아깝다고 드릴로 목뒷통수에 대고 뚫었다고 합니다.
드릴을 목에 대고 사람앞에서 표정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즐겼다고 합니다.
해골을 진열해 놓은 작은킬링필드 모습입니다 출산을 한다는게 인고 이듯이
색갈이 있는 유골은 출산경험이 있는분이고 힌것은 처녀나 남자라고 합니다.
안경을 낀사람도 지식인이라며 처형하고 나니 이나라를 이끌 인재가 없어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이야길 하고 웃는모습의 사진을 올리기가 미안합니다. 툭툭이라는 택시(?)를 타니
기사가 찍어준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며 좀 우울한 이야길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