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서쪽 출입구에서 도로로 내려가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 오른편에 있다.
‘소크라테스 감옥’은 바위 언덕을 파놓은 동굴 같다. 감옥은 3칸인데 창살이 있고 자물쇠로 잠겨 있다. 오른편 끝 방 안쪽에는 골방이 또 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로 당시 '신에 대하여 불경건하며 청년을 타락시킨다' 라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재판 받을 때 배심원이 500명중에 280명이 유죄 판결을 내리고 변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내가 아고라에서 교육을 했는데 나에게 이럴 수 가 있느냐며 ‘죄가 없다’고 버티다가, 추방해도 될 문제를 본인의 고집으로 인하여 360명이 사형을 찬성해서 감옥으로 갔다. 탈출하여 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런 기회들을 모두 거절하였고, 특히 소크라테스의 가장 걸출한 제자 '플라톤'이 돈으로 소크라테스를 구할 수 있었으나 소크라테스는 '내가 평생 아테네 시민으로써 아테네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잘 살았는데 나한테 불리하다고해서 이를 어기고 탈출하면 되겠는가?' 라고 말하면서 이를 거절하고 끝내 독배를 마셨다고 한다.
아레오빠고스는 귀족회의가 열린 곳으로 유명했던 낮은 언덕 이름이었다. 아레오빠고스 회의는 왕의 자문위원회로 시작되어 드라콘의 법전이 공포될 때까지 전반적이고 막연한 권한을 행사했던 ‘법정’이었다. 사도바울은 이 아테네를 방문하여 지엄하게 느껴지던 아레오빠고스에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에게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라고 외치며 복음을 전한 것이다. 아테네는 고대 세계 최고의 지성과 문화의 상징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철학자들의 집합소였다. 그러나 떨지 않고 그 철학과 지성에 도전하며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의 그 용기가 느껴지는 바위언덕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라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조심 다녀야만 했다.
그리스와 로마가 유럽을 주도하던 시절, 그리스는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였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 고대 문명의 지적, 예술적 사상의 출발점이었다.파르테논 신전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을 아크로 폴리스라고 부른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도시라는 의미로 폴리스의 수호신을 모시는 여러 신전들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아테네는 무엇보다도 고대의 신전과 공공건물들로 유명하다. 그중 이 도시의 수호 여신 ‘아테나’를 위해 세운 직사각형의 원주식 신전인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도리아 양식 건축물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이 파르테논 신전은 6세기 경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 1460년 대 부터는 모스크로 사용된 적도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본 아테네 시가의 모습
아테네 국립 카포리스트리아스 대학교의 모습
대통령궁의 정원이 일반에게 공개되어있다.
근대올림픽 경기장의 모습이다. 기원전 4세기부터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파라테나이아 제전이 열렸던 곳이다. 실제 이름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이다. 1896년 최초 근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이름을 따서 ‘스피로스 루이스 스타디움’으로도 불린다.이곳은 BC490년 2만 아테네 시민군이 10만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2.195km를 달려온 병사의 죽음을 기리는 뜻깊은 경기장이기도 하다. 프랑스 쿠베르탕 남작의 제창으로 제 1회 올림픽이 열렸던 장소이다.
여행중 아테네에서 한식을 맛본 귀빈식당은 최상의 요리대접을 받았다. 쌈을 무한리필해주는데 감명을 받았다.
아테네 마지막 새벽에 호텔 옆의 지중해에 발을 담그고 아내 업어주기 행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