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탑승후에 장거리 여행을 떠납니다. 도착한 동쪽해안 바리항에서 서쪽해안 폼페이 까지는 4시간 가까이 달려 갑니다. 이딸리아 동쪽에서 서쪽까지 가로질러 횡단을 합니다.


폼페이 부근에 12시40분에 도착을 하여 해물스파게티로 점심을 먹습니다.


폼페이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한순간에 폐허가 됐다. 16세기 수로 공사 도중 유적이 출토된 것을 계기로 1748년 첫 발굴 작업이 시작됐고, 현재는 과거 도시 형태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고고학 가치가 매우 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돌연 폭발하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분출물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는 이 화산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한 도시 중 하나다.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엄청난 양의 흙과 돌은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어버렸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의해 타죽고 말았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퍼센트인 약 2,000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국왕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유적에 대한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후에도 폼페이 발굴은 계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4/5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곳에서 나온 많은 출토품들은 현재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가 화산재에 묻히고 또 발굴을 했다는데 경의로울 뿐이다.




폼페이를 화산재로 덮어버린 베수비오 화산이 무심이 보인다.


바울이 탄 배는 수라구사와 레기온을 거쳐 나폴리 만의 보디올에 도착했다. 당시 보디올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로마로 가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곳에 들러 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이곳을 ‘포추올리’라고 부른다.

사도바울이 도착한 보디올에 사도바울 기념교회가 있다.





보디올 항구는 아름다운곳이지만 바울과 같이 죄수로 온다면 마음이 달랐을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로마외곽에 있는 모모수시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습니다.
